고대문자의 기원과 종류
1.서론
서양문명에 관한 역사를 공부하다가 이번 과제물의 주제를 문자에 대해 조사를 해보기로 하였다. 인류 문명의 기원 중 문자의 역사는 인류 역사의 총량이라고 생각한다. 문자가 나타나므로 인해 비로소 인류의 생활상이 기록되면서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자는 전달과 내용 저장의 수단으로 기록하는 기능을 가짐과 동시에 이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대상으로의 문자문화가 변천되어왔고, 발전해 나가고 있다. 언어의 시공간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문자는 영구성이 있는 중요한 기호인 것이다.
이러한 문자는 그 기능적 역할이 기록하는 사실에 대한 것으로 업적이 대단히 크다고 볼 수 있다. 문자는 크게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작게는 일부 민족 또는 한 나라의 문화와 과학의 발전, 민족적 자부심을 강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중요한 문화 유산인 것이다. 수 천년의 역사동안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이 흥망을 거듭해 오면서 생성, 발전, 소멸되는 등 많은 변화를 거듭한 문자를 이번 과제물을 통해 문자의 기원과 문명의 근원을 함께 조사해 보기로 하였다.
2. 본론
세계 최초의 문자는 BC 3000년 경 또는 그보다 약간 앞선 시기부터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문자의 기원으로는 크게 이집트의 상형문자(Hieroglyph), 중국의 갑골문자(甲骨文字),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Cuneiformscript)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초기 형태의 문자들은 모두 다 그림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석기 중기인 BC5000년 경 돌이나 뼈에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새긴 조각에서 문자의 기원을 찾을 수가 있다. 이것은 그 후 점차 흔해져 BC 1000년 경에는 선사인류 문명인이 흔히 사용하던 그림문자가 된다. 초기의 그림문자는 단지 기억을 보조해 주는 수단에 불과했으면 의사소통의 대상으로 사용된 것은 인류의 문명이 크게 발달한 중국,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마야 등의 문자를 들 수 있다.
그림문자를 더 간결하게 생략해 만든 상형문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상형문자는 이집트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시기별로 히에로글리프문자, 히에라티크문자, 데모티크문자, 멜로에문자로 나누어 조형적 특징을 살펴본다. 히에로글리프문자는 이집트에서 기원전후 약 3500년경에 사용한 상형문자인데 더 구체적인 명칭은 성스럽게 조각한 문자라는 뜻에서 성각문자(聖刻文字)라고도 한다. 히에로글리프문자는 처음에 표의문자로 탄생하여 표음문자도 생겨나게 되었다. 표음문자가 발전되어 오늘날 이집트 알파벳 24자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표의문자와 표음문자가 모여서 단어와 단문이 되고 더 나아가 문장을 나타낸다. 히에라티크문자는 이집트 성각문자의 약자라고 할 수 있는데 히에로글리프문자를 흘려서 쓴 행서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자는 BC 2650년경부터 BC 1000년경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데모티크문자는 BC 700년경부터 AD 400년경까지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히에라티크문자를 더욱 흘려쓴 초서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을 본 떠 그 사물이나 그것에 관련 있는 관념을 나타낸 문자를 뜻하는 상형문자는 초기의 한자(漢字)와 고대 이집트 문자를 말한다. 고대의 4대 문명은 모두 독자적인 상형문자를 발전시켰으나 그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것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수메르 또는 엘람인의 문자라고 여겨진다. 처음에는 상형문자가 모두 750개 정도였다. 그 기본적인 체계는 처음 태어난 모습 그대로 어떠한 변형도 겪지 않았다. 마지막 신전이었던 필레 사원이 폐쇄될 때까지 상형문자들의 모양은 한결 같았다. 상형문자들은 그 기본원칙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나름대로 발전을 거듭했다. 고대 이집트어라 함은 고대왕국시대의 언어를 일컫는 말로서 [피라미드의 서(書)]도 고대 이집트어로 쓴 것이다. "중기 이집트"또는 "고전기 이집트어"는 중왕국 시대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문법학자들이 주로 연구 하는 언어도, 이집트학의 계기가 된 상형문자도 이 시기에 속해 있다. 유명한 〔시누혜 이야기〕도 중 왕국 시대에 쓰여진 것이다.
문자의 양이 꽤 많이 늘어난 신 왕국시대의 상형문자도 중 왕국 시대의 원칙을 그대로 유지해 간다. 한참 뒤인 이른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는 사제들이 엄청난 양의 상형문자 기호들을 새로 만들어 냈다. 이때 만들어진 상형문자들 중 에는 해독이 어려운 것도 꽤 있다. 상형문자의 특징은 거의 완벽하게 구어를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대상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도 잘 나타낼 수 있었고 농업, 의약, 법전, 교육, 종교, 전승, 기타 문학 일반에 관련된 자료를 모두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형문자 체계는 본래 구체적 사물을 의미하는 그림부호로 이루어져 있다. 점차 이 기호들 중 몇몇이 양식화 되면서 추상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별개의 음절 등을 나타내기 위해 다른 문자들이 도입되었는데, 그것들은 단어들을 이루기 위해 결합될 수 있었다. 끝으로 제각기 한 가지 자음을 나타내는 24개의 기호가 고왕국 초기에 추가되었다. 그 결과 상형문자의 체계는 초기에 세 가지 별개의 문자 형태, 즉 그림문자 및 음절문자, 알파벳문자를 포함하게 되었다.
이 문자의 독창성과 복잡성은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 기호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따른다.
첫째는 대상이나 사물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그림으로 구성된 "그림문자"이다. 이 문자들을 겹쳐 사용하면 추상적인 개념도 표현할 수 있었다. 풍뎅이나 말똥풍이 또는 태양같은 상형문자가 그것이다. 만일 표의문자나 그림문자의 다른 단어에서 자음근이 생길지라도 표음문자를 변형시켜 간단히 음으로 나타내어 사용하였다. 둘째는 "표음문자"이다. 같거나 다른 형태의 표음문자가 소리를 표기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어떠한 물체를 묘사하지 않고, 하나의 자음이나 보다 더 많은 자음을 나타낸다. 표음문자는 표의문자보다 늦게 생겼는데 글자마다 일정한 음가를 가지고 있어 발음을 규칙적으로 할 수 있다. 셋째는 "한정부호"이다. 이것은 문맥 속에서 한 기호가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지적하는 것인지 알려 주는 부호이다. 많은 고대이집트 단어들은 같은 기호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단어의 마지막에 "한정사"라고 불리우는 것을 쓰고서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게 도와주었다.
18세기까지 고대 문자들은 해독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1799년 나폴레옹 군의 한 장교에 의해 나일 강 서쪽 델타 지역의 리시드 마을에서 로제타석이 발견되어 고대 문자의 해독이 가능해졌다. 높이가 약 117Cm, 너비가 약 74Cm인 로제타석은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799년 8월 이집트 통신은 이렇게 썼다. "이 돌은 상형문자 연구에 상당한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 아니 그것을 해독하는 열쇠를 마련해 줄지도 모른다." 로제타석이라고 알려진 돌기둥은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때 발견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동쪽, 나일강의 서부 지류에 위치한 라시드항 부근에서였다.
그것은 BC 196년에 제작되었다. 당시 열두 살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멤피스에 모인 사제들이 왕을 기리는 칙령을 그리스어로 만들어 돌에다 새겨 넣은 것이었다. 텍스트는 그리스어로 쓰였지만 그에 앞서 민중문자와 상형문자로 된 번역이 새겨져 있었다. 현재 영국 런던에 있는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샹폴리옹은 1808년에 파리에서 로제타석의 탁본을 구해 여러 해 동안 연구했다. 그는 상형문자로 쓰인 텍스트에는 두 개의 타원형이 있으며, 테두리 속에 들어있는 이름은 그리스어 텍스트에 나오는 클레오파트라와 프톨레마이오스라고 주장했다. 1804년 그로노블의 왕립 고등학교에서 수학하던 시절부터 상형문자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는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중국어, 콥트어,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아라비아어, 시리아어 등을 공부했다. 그리고 곧 콥트어가 고대 이집트어에 사용되던 언어의 최근 형태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1822년 파리에 있는 프랑스 문학학술원의 존신서기인 앙드레 다시 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고대 이집트인이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직책, 이름, 성을 써넣는 데 사용한 음운 알파벳에 관한 이론을 설명했다.
샹폴리옹은 곧 그것을 로제타석의 해독에 원용함으로써 그 이론의 정당성을 입증했다. 그는 1824년에 ??고대 이집트인의 상형문자 체계에 대한 개요??라는 저서를 내놓았고, 1828년에는 예술가 네스토 로트와 함께 이집트 탐사여행을 떠나 탐사의 단계별 기록을 일기에다 깨알같이 기록했다. 그러나 샹폴리옹은 프랑스로 돌아오는 길에 과로로 사망했다. 42세였다. "해독의 열쇠" 이 말은 물체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가 단지 뜻을 표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정한 음(소리)을 말하는 데에 사용되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모든 상형문자는 표의(表意) 기호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샹폴리옹은 놀라운 직관력을 발휘하여 로제타석 속의 기호는 사물뿐만 아니라 소리도 나타낸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그는 콥트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테두리 장식 속에 들어있는 기호의 의미를 해독해 낼 수 있었다. 그는 타원형 테두리 장식 속에 들어 있는 텍스트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일반적으로 산형문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었지만 사자의 시선이 특별한 안내역을 맡았던 것이다.
샹폴리옹은 클레오파트라의 이름을 다른 돌에서 읽어 냈다. 로제타스톤은 맨 윗 부분에 적혀 있던 클레오파트라의 테두리 장식은 부분적으로 파괴되어 잘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그는 나머지 텍스트를 해독할 수가 있었고 상형문자가 표의(表意) 기호뿐만이 아니라 표음(表音) 기호로도 구성되어 있음을 확실하게 정립했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 이는 미국의 고고학자 사무엘 크래머가 1956년 펴낸 동명(同名)의 책에서 한 말이다. 그는 전세계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메소포타미아 점토판 문서들을 번역·분석한 결과, 수메르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발견되고, 기록된 것이 최초의 낙원설화·창조설화·서사시·학교제도·의회제도·설형문자·법전 등 39가지나 된다면서 그같은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는 수메르지역(우룩 이후 셈계인들이 정착한 메소포타미아 남부지역)이 고대 이집트보다 앞서 문명이 이루어졌다고 분명히 밝혔던 것이다.
문자의 발달 과정을 알아보면 단순한 그림문자인 상형문자에서 설형문자(楔形文字 쐐기문자cuneiform script)로 발전하였다. 설형문자는 그 이전의 그림문자와는 달리 구체적 사물뿐만 아니라 동작이나 추상적인 개념까지도 표현했다. 예를 들면 발(脚)이란 단어는 발뿐만 아니라 '서다'와 '간다''온다'는 뜻을 갖고 있었으며, 화살이란 말은 '산다'(生)와 '생명'을 함께 뜻했다. 그러나 아직 시제(時制)나 누가 누구에게, 또는 어디서 어디로 라는 대상이나 목적격 개념이 없었기에 완벽한 문장이 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마귀를 쫓는 주문(呪文), 신과 신전을 찬양하는 시,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치는 잠언(箴言), 도시와 도시 사이에 생긴 전쟁을 서술한 전쟁 이야기, 정의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사회개혁 칙령이나 법전 등을 편찬했다. 그중에서도 '대홍수 이야기'와 '길가메시 서사시''우르남무 법전' 등은 수메르 설형문자가 남긴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수메르의 설형문자는 아카드인에 의해 상속되고 이것은 다시 바빌로니아인, 아시리아인들에게 전해져 고대 오리엔트 전 지역에 퍼졌다. 이어서 인도유럽어 계통인 히타이트어와 페르시아어에도 전해져 다양한 변화를 겪으면서 약 3천년간 서아시아 지역의 공용어로 사용되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그 사용이 크게 위축되다가 서기 74년을 끝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19세기 중엽 유럽 언어학자들의 손에 의해 해독되면서 그들의 내밀한 세계가 알려지게 되었다.
BC3000년 경부터 약 3,000년간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고대 오리엔트에서 광범하게 사용된 문자로서 설형이 쐐기를 뜻하는 한자이다. 기원전 24세기경 수메르지방에서 생겨 쓴 이 문자는 글자 쓰기에 힘을 주어 쓰되 곡선 획은 차차 없어지고 직선만 사용하여 쓴 문자이다. 바빌로니아에서도 기원전 17세기에 설형문자가 쓰였고, 메소포타미아 북부 아시리아 에서도 기원전 8,9세기에 쓰였는데 삼각형과 직선으로 나타냈다.
또 고대 페르시아에서도 굵고 뾰족한 설형문자를 썼다.한자(漢字)와 마찬가지로 회화문자(그림문자)에서 생긴 문자이다. 점토 위에 갈대나 금속으로 만든 펜으로 새겨 썼기 때문에 문자의 선이 쐐기 모양으로 되어 설형문자라고 한다. 설형문자를 발명한 것은 수메르인(人)이며, 수메르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문자는 우루크의 에안나 신역(神域)의 제4층(우루크 후기)에서 발견된 회화문자였다. 발견된 문자의 수도 많은데, 현재 알려진 문자의 수는 약 1,000자에 달한다. 그 다음의 제므데드 나스르기(期)에서는 회화문자에서 설형문자로 발전하는 과도기의 형태를 보여 주며, 동시에 표음화의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초기 왕조시대에 이르면 설형문자는 일반화되고,표의 ·표음문자가 병용되었다. 바빌로니아 남부를 통일한 셈계의 아카드인들은 설형문자를 채용하여 아카드어(語)를 표기하였다. 그로부터 표음문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커지고, 표의문자의 수는 줄어들었다. 아카드어는 제국 멸망 후에도 국제어로서 오리엔트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그 때문에 설형문자는 바빌로니아인이나 아시리아인 등 셈계의 여러 민족들뿐만 아니라, 비(非)셈계의 후르리인 ·히타이트인 ·페르시아인들도 사용하였다(마리문서 ·아마르나문서). 이들 중에서 페르시아의 설형문자는 자획(字畵)이 간략해지고, 자수도 37자로 정리되었다. 시리아의 라스 샤므라에서 발견된 우가리트 왕국의 설형문자는 자수도 30자에 불과하고, 완전히 알파벳화하였다.
설형문자는 BC 1세기경까지 사용되었으나 그리스문자나 아람문자의 보급으로 점차 잊혀지게 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중근동 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고대 유적에 남아 있는 설형문자의 각명(刻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40 ~ 1847년에 걸쳐 아시리아의 구도 니네베에서 세계 최고의 도서관이라는 앗슈르 바니 파르 왕궁문고의 유적이 발굴되면서, 2만 2천 개의 점토판이 발견되었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에서는 기왓장처럼 불로 구어 단단하게 한 점토판이나 벽돌처럼 햇볕으로 건조시킨 판에 글을 썼던 것입니다. 후에 이 문서들은 바빌로니아 및 아시리아의 역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지만, 그러나 점토판에 있는 설형문자는 한동안 누구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 전반, 아시라아학의 아버지로 통하는 독일의 그로테펜트와 베히스툰의 다리우스1세의 3국어 병용비문(倂用碑文 페르시아어, 바빌로니아어, 스사어)을 단서로 한 영국롤린스의 연구로 먼저 페르시아어가 해독되고, 계속하여 엘람어 ·바빌로니아어 ·수메르어의 해독에도 성공하였다.
설형문자의 연구는 유적의 고고학적 조사와 병행되어 진행되었다. 각지의 박물관이나 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점토판 문서들이 정리 ·해독(解讀) ·출판되고 있다. 문서 내용은 경제관계를 중심으로 정치 ·종교 ·문학 ·외교 ·천문학 ·수학 ·연대기 등 각 방면에 미치고 있다. 또한 함무라비법전을 비롯한 설형문자법의 연구도 추진되고 있다.
여러 세기에 걸쳐 설형문자는 많은 변화를 거듭했고, 나아가 문자 기호가 구어(口語)를 나타내면서 문자 체계가 중대한 발전을 하게 되었다. 수메르인과 이집트인의 놀라운 업적은 간단한 레부스 라는 체계를 이용했다는 것 이다. 그들은 그림문자를 사용할 때, 대상 자체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나타내는 소리를 기록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창안했다. 예를 들어 양탄자를 나타내는 'carpet'을 쓰고 싶다면, 그 양탄자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의 음소(音素 - 소리값)인 'car(달구지)' 'pet(애완동물)'의 그림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두 그림 'car'와 'pet'을 그려 놓고 그것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carpet'이 되어 그림과는 무관하게 그 뜻(양탄자)을 전달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오늘의 우리에게는 너무도 쉽게 느껴질런지도 모르겠으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새로운 방법이었던 것이다.
고대 오리엔트 지역에 수메르의 설형문자와 쌍벽을 이루던 문자로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가 있었다. 히에로글리프(Hieroglyph)란 그리스어로 신성하다는 'Hieros'와 새기다, 조각하다는 뜻의 'Gluphein'의 결합어이다.그러나 고대 이집트인은 자기네 언어를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로 그렸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이끌어 달라고 의지할 수 있는 '신의 지팡이'이자, 귀 기울여야 하는 말씀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히에로글리프를 신성(神聖)문자라 부르는 것은 이같은 신의 언어라는 뜻에서였다. 이집트인들은 신성문자를 그들에게 전해준 자는 따오기의 머리를 가진 토트(Thoth)신이라 생각하고, 그를 지식과 학예의 신으로, 또 서기(書記)의 신으로 숭상했다 .
히에로글리프가 등장한 것은 대략 기원전 3천5백년께로 히에로글리프의 발명은 중앙집권화를 가능케 하여 기원전 3천1백년께에는 드디어 이집트에 처음으로 통일 왕조가 들어서게 되었다. 히에로글리프의 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피라미드와 같은 정밀하고도 거대한 건축물을 축조케 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은 그들의 문자를 먼저 돌에 새겼다. 다음에는 파피루스 종이를 만들어 그 위에 펜으로 썼다. 초기의 반듯반듯했던 히에로글리프는 파피루스 위에 씌여지면서 흘림체로 바뀌어 갔다. 흔히 '민중(民衆)문자'라 불리는 데모틱(Demotic) 자형(字形)이 나타났던 것이다. 히에로글리프와 데모틱의 병용은 후일 히에로글리프를 해독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문자의 도움을 빌어 역사를 기록하고, 왕들의 계보를 작성하고, 왕족의 결혼이나 전쟁 따위의 중요한 사건을 기록할 수 있었다. 또한 이 문자체계는 거래량을 기록하고, 법전과 성혼 서약을 작성하고, 물품 매매계약을 작성하는 데에도 이용되었다.
그것은 문학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어서, 고대 이집트 문학은 다양한 자료를 포함하고 있으며, 내용이 풍성하다. 여기에는 도덕적 격언. 신과 왕에게 바치는 찬사, 역사적 사건이나 모험담, 사랑의 노래, 서사시, 우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문학 가운데 오늘날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B.C. 13세기에 존속한 19왕조 시대에 상형문자로 쓰인 <사자(死者)의 서(書) Book of the Dead>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예언, 마법, 의술, 약전(藥典), 요리, 천문, 시간의 측정 등을 다룬 지리책이나 과학책도 만들었는데, 이 책들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자료이다. 예를 들어 그전에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만든 태음력은 B.C. 3,000년 경에 태양력으로 바뀌어 1년은 365일과 1/4일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도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수메르 상형문자와 설형문자는 결국 오늘날의 세계를 주도하는 서구문명의 견인차 노릇을 담당했다. 서구문명은 희랍-로마문명과 유대교-기독교문명을 양대 근간으로 삼고 있다. 수메르 문명이 신화 종교 역사 법률 교육 제도 언어 문자 문학 예술 등과 같은 정신문화뿐만 아니라 농업 공예 건축기술과 같은 물질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문자 문명 덕이며, 이를 수메르의 자문명이 전승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문자문명 덕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메르 민족은 아카드인에 통합, 멸절되었는데 이는 수메르 왕조가 애급 왕조처럼 장구하지 못한 데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또한 수메르 문자문명 역시 후대의 여러 설형문자로 끝나 버렸다. 애급 상형문자가 전승, 발전하여 알파벳의 모태가 된 사실과 견주면 문자문명의 기원을 담당했던 그 영광은 애석하게도 과거의 것으로 머물고 만다.
최초의 문자문명을 일으킨 수메르인과 수메르어의 계통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수메르인과 가까운 종족이 과거에 없었으며, 수메르어와 비슷한 언어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현재 수메르인의 후손은 남아 있지 않으며 수메르어의 후대어도 남아 있지 않다.
3. 결론
문자가 발달한 변화 단계를 자세히 알아보면서 다시 한 번 문명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알았다. 어느 시대의 인류이든 서로의 상호작용을 위해서 좀 더 간결하고 공통적인 의미를 담기 위해 언어를 점점 발전시켜 나간 것은 참으로 위대한 발명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지혜나 지식, 그리고 감정은 문자에 실리면서 시간적·공간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커뮤니케이션의 범위가 엄청나게 확장된 것이다. 인류 초기의 사람들도 자식들에게 오늘의 우리들처럼 "도둑질을 하지 말라, 살인강도를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젊은 여자와 놀지 말라" 등과 같은 교육을 했는지 알게 된 것은 바로 그들이 남겨 놓은 설형문자 점토판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문자는 이렇게 5천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그들과 오늘 우리 사이를 이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몇 천년에 걸쳐 이룩한 인류 문화를 우리는 바르게 알고 해석하면서 우리 역시 정확한 문자를 통해 인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문자이야기 (앤드류 로빈스/박재욱 옮김) 사계절풀판사
고대 그리스의 역사 (토머스R 마틴/이종인 옮김) 가람기획
서양문명의 역사 (E.M.번즈/R.러너/S.미첨/박상익 옮김)
고대문자의 기원과 종류
고대문자의 기원과 종류
고대문자의 기원과 종류 1.서론 서양문명에 관한 역사를 공부하다가 이번 과제물의 주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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