專欄 | 엣세이/最想说的话---人生篇

싸워서라도 옳은 것을 세워라, 다석이 읽은 편지

琢言 - 내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25.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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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서라도 옳은 것을 세워라, 다석이 읽은 편지

 

기자명 더뷰스 
더뷰스 다석읽기 : 옳은 것을 위해 기꺼이 죽는다는 것

한국전쟁에서 죽은 미군병사의 편지
라디오 미국의 소리 프로그램에서, 밝는 날(내일)은 미국에서 남북전쟁 이래 행사로 하는 전사자 추도일이라 하며, 5월30일 전사자 짼 매코니 집에서는 그 과수씨(미망인)과 두 딸은 다른 날보다 일즉 이러나서 국기를 달고, 새 옷을 입고, 어머니가 편지 한 장을 잘 두어뒀던 것을 꺼내어서 두 딸에게 삼가 읽어줄 것이라 한다.
그 편지의 일부(날짜)는 1950년 9월20일자요, 부친 곳은 한국 왜관(倭館)이라 한다.
편지 속엔 이렇게 씌어있었다. <나도 집에서 너희 둘(딸)과 너희 어머니와 같이 있고 싶은 것은 말할 것도 없으나, 이 세상에는 악한 이가 있어서 옳게 사는 이를 못살게 하는 일이 있는데, 그런 것은 싸워서라도 물리치는 것이 옳다고 아버지는 생각하므로 이 열 해 동안에 나는 두 번 전쟁에 나온 것이다. 너희도 이 다음에 자라서라도 너희 양심에 옳은 줄로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는 싸워서라도 옳은 것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싸우다가 몸을 다치기도 하는 것이며, 죽기까지 하여 하늘로 가기까지도 하는 것이니라. 아버지도 이 쓰는 편지가 너희에게 마지막 하는 편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나저러나 너희 할머니 하고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잘 자라서 좋은 사람들 되기를 바란다.>  이 편지가 과연 그 용사의 마지막 쓴 글월이었다 한다.

인생과 피를 생각하게 된다.
11시 모임에 요한1서 5장 6~7절 ‘성령과 물과 피라’를 보다.
[다석일지 1955년 5월29일, ‘매코니’]
10년새 두번 전쟁터로 달려간 병사
류영모는 이날, 뉴스로 들은 사연을 자세하게 적어놓았다. 짼 매코니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싸우다가 전사했다.
그가 스스로, 10년간 두 번 전쟁에 나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럽의 전쟁(2차세계대전)에도 참전했던 것 같다. 그때 목숨걸고 싸운 뒤 살아나와, 다시 한국전쟁에 온 것이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그가 전사한 때는 1950년 9월 20일 이후 어느 날이었다. 마지막 편지인 것으로 보아, 얼마 있지 않아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석달이 지난 때였다.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 전쟁에서 죽은 미군 병사
9월 15일 새벽, 미 해병 제1사단과 7사단으로 이뤄진 제10군단은 9월15일 새벽에 인천 월미도에 기습상륙했고 이튿날 인천을 함락시킨다. 미 해병대는 서울로 진격했고, 미 7사단은 남쪽으로 내려가 올라오는 유엔군과 오산에서 합류를 했다. 이에 북한군은 남북으로 단절되었고 한반도 중부와 동쪽의 산악지대로 도망치고 있었다.
9월26일 유엔군은 서울에 진입했고 사흘 뒤 완전 탈환했다. 이 무렵의 격전 와중에, 짼 매코니는 전사를 했을 것이다.
‘싸워서라도 악한 일을 물리치는 것이 옳다’고, 자신의 국가도 아닌 다른 나라의 정의(正義)를 지켜주기 위해 저토록 단호한 말로 어린 딸들에게 역설하는 미국군인을 보며, 저 목숨의 혜택을 입은 이 땅의 국민 중의 하나인 류영모도, 가슴에 들어차는 깊은 무엇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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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보면 싸워서라도 물리치는 게 옳다고, 딸들에게 편지
‘너희도 이 다음에 자라서라도, 너희 양심에 옳은 줄로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는 싸워서라도 옳은 것을 세워야 한다’고 딸들에게 당부하는 군인 아버지. 마지막 편지가 될 수도 있음을 각오하고, 죽어 하늘로 갈 수 있음을 말하는 저 군인에게, 류영모는 다시 ‘삶의 가치’란 무엇이며 죽음으로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해보았을 것이다.
류영모는 ‘인생과 피를 생각하게 된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요한1서 5장6절의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구절을 다시 읽었다.
그가 기꺼이 전쟁을 치르는 짼 매코니에게서 느꼈던 것은, 인류 박애(博愛)를 실천하는 예수였다. 예수 또한 믿음에 대한 무지와 핍박에 저항하여 그 피를 아끼지 않았다.
믿음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결코 꽃길일 수만은 없다. 오히려 위험하고 고통스럽고 육신의 불행을 자초하는 길일 수 있다는 걸 예수가 보여주었듯이, 아무런 거창한 구호를 말하지 않은 채 ‘옳은 것을 세우는 이’에 목숨을 거는 매코니가 보여주었다.

류영모도 '시대 속의 인간'이었다
65세의 류영모가, 서울(당시 경기도) 구기동의 깊은 집에서 라디오 방송을 듣고 그 내용의 전부를 옮겨놓은 뉴스 하나는, 그 또한 전쟁 직후의 폐허같은 나라를 살아가는 ‘시대 속의 인간’이었음을 묵직하게 드러내준다. 성경 구절 하나를 덧붙이면서, ‘피를 생각하는 인생’이란 짧은 논평을 달아놓는 그 마음을 살펴볼 만하다.
일제 식민지를 겪으면서, 그는 ‘종교’가 지나치게 집단화하고 국가화하는 것이 빚어내는 모순과 광기를 경계해온 바 있다.
믿음은 신과 인간이 단독대면하는 수행의 길일 뿐, 그 밖의 거창한 것들이 모두 허울에 지나지 않음을, 종교사적인 사례들과 역사적인 우행들로써 뚜렷이 읽어낸 바 있다.

우치무라의 일본전쟁 묵인에 대한 비판시선
서구 교회와 교의가 빚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탈선이나, 일본의 종교사상가인 우치무라 간조가 '전쟁을 벌이는 제국'에게 보여준 기이한 묵인이나 추종은 결국, 종교가 지켜야할 그 자율성과 단독성을 다른 것으로 확장하고 애국심이나 집단주의와 영합하려 한 데서 나온 모순이라고 보았다. 류영모의 사상은 철저히 자율종교로 일관해 왔다.
그런데 매코니의 경우를 보면서, 자기 국가의 이익은 물론 스스로의 삶의 안녕조차도 넘어선, ‘옳은 것을 위한 결기’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깊이 묵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살핀 것이, 예수의 죽음이었다. 예수는, 신과 자신의 단독대면이나 결속을 위해서만 믿음을 견지하고자 했다면, 굳이 로마의 핍박을 자초할 필요도 없었고 십자가에 매달릴 이유도 없었다.

가만히 있었다면, 예수도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았을 것
그가, 기꺼이 육신을 죽음으로 내던진 까닭은, 인류를 ‘옳지 않음’에서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스스로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를 위해서 한 일이다. 이 결단은 매코니와 같지 않은가. 예수의 선택은, 저 이역에서 죽음을 택한 매코니의 길로서 다시 새롭게 빛나는 것이 아닌가.
류영모의 인용문과 비장하리만큼 간결한 논평은, 그가 종교의 근본을 새롭게 하는 길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예수가 택한 ‘목숨을 건 박애(博愛)’를 가슴에 새기는 의미심장한 계기가 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믿음은 ‘나’를 구원하는 길이지만, 나의 구원은 나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세상의 고난을 스스로 십자가에 지고 이겨내는 희생의 길과 병치되는 것임을 깊이 각인한 것이다.
매코니의 경우를 보면서, 자기 국가의 이익은 물론 스스로의 삶의 안녕조차도 넘어선, ‘옳은 것을 위한 결기’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깊이 묵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살핀 것이, 예수의 죽음이었다.

어느 미군의 편지에 크게 감동한, 다석 류영모.


인생과 피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인생과 피를 생각하게 된다’는 이 날의 언급을, 다석사상의 내면을 확장한 징표로 읽는다.
해방 이후 함석헌이 스승 류영모를 지지하면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쪽이 아니라 십자가를 몸소 지는 쪽’이라고 말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십자가는 기원(祈願)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상징이다. 이날의 다석일지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ㅣ 더뷰스 저녁공부 isomis@naver.com

싸워서라도 옳은 것을 세워라, 다석이 읽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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