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맛 ㅣ 신의 한수? 시인의 한수?...박용래 시 '뜨락'의 비밀
한참 동안 기다려도 주인은 오지 않고, 고요하고 무료한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길어지기에 무엇이든 정밀하게 움직이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르흐는 그늘'.
시집을 출간한 민음사 편집자가 뼈아픈 실수를 남겨놓은 것일까. 아니면, 박용래가 급히 쓰다 잘못 쓴 것일까. 아니면, 의도를 갖고 쓴 표현일까. '흐르는'이 아니라, '르흐는'이라니.
더뷰스 시의맛 : 흐르는 해, 르흐는 그늘

새벽에 일어나 문득 박용래 시집을 펼친다. 민음사 오늘의 시인총서에서 나온 '강아지풀'. 37쪽에 실린 '뜨락'을 읽다가 묘한 구절을 발견했다.
모과나무, 구름
소금항아리
삽살개
개비름
주인은 부재
손만이 기다리는 시간
르흐는 그늘
그들은 서로 말을 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족과 같이 어울려 있다
박용래 '뜨락'
아무도 없는 집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손님
박용래는 지금 어느 뜨락에 오신 '손(客)'이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객이 홀로 앉아 혹여 주인이 곧 올까 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섬돌이나 툇마루 쯤에 엉덩이를 설붙이고 앉아 뜨락을 둘러본다.
모과나무, 구름. 고개를 들어 뜨락 한쪽에 무성한 모과나무를 바라본다, 그 모과나무 뒤편의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바라본다.
그러다 고개를 떨궈, 꼬리를 흔들며 저기쯤 다가와 있는 삽살개를 본다. 삽살개가 있는 한켠에 개비름이 돋아나 있다.

무료한 김에, 거듭 둘러보는 뜨락풍경
한참 동안 기다려도 주인은 오지 않고, 고요하고 무료한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길어지기에 무엇이든 정밀하게 움직이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르흐는 그늘'.
시집을 출간한 민음사 편집자가 뼈아픈 실수를 남겨놓은 것일까. 아니면, 박용래가 급히 쓰다 잘못 쓴 것일까. 아니면, 의도를 갖고 쓴 표현일까. '흐르는'이 아니라, '르흐는'이라니.
'흐르는'이 아니라, '르흐는'...의도일까, 실수일까
그런데, 그렇게 써놓고 보니, '르흐는 그늘'이란 말이 묘한 어감과 여운을 느끼게 한다. 박용래는 '그늘이 흐른다'는 말에 시의 눈을 매달았다.
그늘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대개 지상을 잠시 서늘하게 염색한 듯 고정되어 있는 느낌이 있지 않던가. 그러나, 오래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그늘이 움직이며 이동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모과나무에 떠가는 구름이, 그늘을 흐르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는, 기다리는 시간이 꽤 오래 되었기에 그동안 그늘이 이동한 것이다. 해가 움직인 결과이긴 하지만 시간이 그늘을 옮기며 흐른 셈이다.

출판사 편집자의 실수? 혹은 시인의 오타?
이 멋진 대목이 '르흐는 그늘'로 되면서, 독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나는 이 유명출판사의 편집자가 실수했을 리 없고, 이 시인이 이 중요부위에서 오타를 냈을 리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이게 무슨 뜻이던가. 이때부터, 나는 상상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해가 흘러가고 그에 따라 그늘도 흘러간다. 하지만 해와 그늘은 흘러가는 방향이 다르다. 해가 서쪽으로 흘러갈수록 그늘은 동쪽으로 이동하지 않던가. 그러니 '르흐는 그늘'은, 흐르는 해의 정교한 반영일 수 있지 않은가.
해는 서쪽으로 흐르고, 그늘은 동쪽으로 르흐고?
시인은 말한다. 이 뜨락과 주위의 모든 것들이 사람들처럼 서로 대화를 나누며 협의하여 풍경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그게 '그들은 서로 말을 할 수는 없다'의 의미다.
그들은 다만 둘러앉은 가족처럼 이심전심으로 가끔 서로를 쳐다볼 뿐이다.
모과나무와 구름과 소금항아리와 개비름은 저마다 정위치에 있으라고 지시받은 적도 없고, 저희들끼리 모의를 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한 가족과 같이' 어울려 있는 것이다.
가족은 뭔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아는 사람들이다. 그 마음을 알고 그 버릇을 알고 그 생각을 알고 그 내력을 알기에, 굳이 기자처럼 인터뷰를 딸 필요도 없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이행되는 질서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는 긴 시간에, 뜨락의 주변이 모두 가족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아무 것도 서로 논의하거나 누군가에게 무엇을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가만히 이행되는 질서 때문일 것이다.
그늘은 누가 옮겼는가. 해와 구름이다. 해가 흐르고 구름이 흐르는 바람에 모과나무 그늘이 반대쪽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해가 서쪽으로 흐르기에 모과나무는 그늘을 동쪽으로, 이를테면 역방향으로 '르흐는' 일을 한 것이다. '흐르다'의 반영(反影)이 '르흐다'인 셈이다. ㅋㅋ.
서쪽으로 가는 해, 동쪽으로 가는 그늘
박용래의 의도였다면, '시인의 한수'였고, 오기(誤記)였다면 하늘이 거들어준 '신의 한수'였다고 할까.

박용래(朴龍來, 1925-1980)는 이름처럼 우리곁으로 온 '눈물많은 용(龍)'이었다. 청남 논산 강경읍 출신으로, 일제 때인 1943년(18세)에 강경상업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조선은행에서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1946년에 호서중학교 교사로 부임해 1973년까지 27년 동안 사도(師道)를 걸었다. 고혈압이 심해져 학교를 나와, 오롯한 시인의 길을 걸었다. 1980년 여름에 교통사고를 당해 석달간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그해 가을에 눈을 감았다. 1984년 대전 보문산공원에 박용래 시비가 세워졌다.
작가 이문구는 그의 약전(略傳)에서 "해거름녘 두 줄기 눈물을 석잔 술의 안주로 삼는 눈물의 시인"이라고 박용래를 표현했다. 감성이 풍부했던, 맑고 따뜻한 시인이었다. 박용래는 김소월-김영랑-박목월로 이어지는 서정시 계보를 이으면서도 모더니즘 기법 또한 실험했던 현대적 서정시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더뷰스 시의맛 리뷰어 빈섬 이상국 isom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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