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餘의 '꽃그늘 아래'20] 눈길도 손길도 아닌, 그 발길이 진짜였네
오지 않는 사랑은 죽은 사랑이다. 그 시간 그는 그의 마음이 닿아 있는 어딘가에 가 있을 것이다. 머리는 애써 핑계를 만들지만 발은 김유신의 애마처럼 본능적 직관적 심중에 충성한다.
[더뷰스 小餘의 '꽃그늘 아래'20]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마음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
젊은 날엔 마음이 눈을 따라 다녔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마음을 당겨갔다. 먹고 싶고 입고 싶고 갖고 싶고 하고 싶은, 모든 욕망이 눈에서 돋아났다.
마음이 심장에서 발각될 때도 있었다. 중요한 일들을 앞두고 있을 때, 사소한 거짓말이 들통 났을 때, 누군가 내 안을 가만히 다녀갈 때, 심장이 쿵쿵 소리 내어 뛰었다. 켜켜이 포개지고 중첩된 파동들이 일렁이는 물결처럼 흘러왔다 흘러갔다. 호수처럼 잠잠하다 폭포처럼 요동치고 여울목을 맴돌듯 같은 자리를 휘돌다가 시끄럽게 떠내려가기도 했다.
소란스런 젊음의 모퉁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고 헤매보기도 하면서 나는 어쩌면 알아버린 것 같다. 마음의 정좌처가 어디인지를.

알겠다, 발이 마음이라는 것
식물의 사령부가 뿌리에 있듯 동물의 수뇌부는 머리에 있다. 감각과 의식을 관장하는 머리, 정확히는 뇌의 판단에 의해 '나'라는 시스템이, 운영체계가 작동된다.
머리가 본체고 손발은 지체, 마음이라는 터줏대감도 머릿속 어딘가에 좌정해 있으면서 육신의 하수들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걸 거라고,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젊은 날에는.
살아보니 알겠다. 사는 일이 시간 축 공간 축 상에서 지금, 여기의 좌표를 이동해가는 순간 순간의 궤적이라면 그 동선에 최후통첩을 내리는 주체는 머리가 아닌 발이라는 것을. 머리의 순발력보다 발의 의지가 삶의 속도나 향방을 결정한다.

삶의 속도와 향방을 결정하는 것
기실 동(動)이나 식(植)같은 목숨의 정체성 또한 접지(接地)에 준거한 다리의 일 아닌가. 걷고 뛰고 달리고 멈추며 일생 이런저런 영역싸움을 하다 가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구접스러운, 동(動)적인 짐승 같기도 하고.
인생은 고 스톱, 행도 불행도, 눈물도 웃음도, go와 stop 사이, 누웠다 일어났다 사이의 현란한 춘몽(春夢)일 뿐. 사람의 일생이 다사다난이어도 기껏 침대에서 침대까지, 나날의 루틴을 반복하고 변주하는, 수직과 수평 사이의 노정일 뿐이니 이 또한 다리의 일 아닌가.
두 발을 건반 삼아 대지를 두드리며 잠깐 스쳤다 스러지는 안개 같은 환(幻)을 좇아 에튀드와 카덴차를 불연속적으로 연주하다 무대 뒤로 사라지고 마는.
요양병원에서 발견한 발들
활기가 사라진 요양병원 안, 껍질만 남은 매미처럼 멍하니 누워버린 노인들의 발들을 목도한 적이 있다. 좌표를 잃고 멈춰버린 발이 초점 잃은 눈보다 더 슬퍼보였다. 육신의 저 안쪽, 마음인지 영혼인지가 빠져나가 버린 쓸쓸하고 무심하고 무표정한 삭신들.
직립을 포기한 인간의 발에서는 더 이상의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직립이란 몸의 자세에 앞서 땅과 하늘 사이의 긴장을 견디는 마음의 형식 같은 것 아닐까.

뿌리가 뽑힌 나무들처럼 땅기운을 흡착하지 못하고 비스듬히 누워버린 노구(老軀)들 위로 흙냄새를 그리워하는 발가락들만 허옇게 떠 있던 병실 풍경이 이따금씩 눈앞에 아른거린다.
메마른 입술과 굼뜬 혀 대신 묵언으로 웅변하는 발들의 말씀이 어둑신한 실내를 휘돌고 있던. 마음은 발에 있다고. 삶도 꿈도, 삐걱이는 침상에 붙박여 버렸다고. 사람은 제 발로 걸어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을 때까지, 그 때까지가 살아있는 거라고.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그러므로 그대여, "미안해. 함께 하고 싶은데 시간이 안 되어..." 라거나 "마음은 지척인데..." 라고 말하는 애인이나 친구, 자식을 믿지 말라.
오지 않는 사랑은 죽은 사랑이다. 그 시간 그는 그의 마음이 닿아 있는 어딘가에 가 있을 것이다. 머리는 애써 핑계를 만들지만 발은 김유신의 애마처럼 본능적 직관적 심중에 충성한다.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 내 마음 머물게 하여 주오...' 하는 조용필의 노랫가사처럼 머리나 심장이 아니라 두 발의 리듬이 영혼의 박동이고 최후적 진심이다. 小餘 더뷰스 - 소여의 꽃그늘 아래
[小餘의 '꽃그늘 아래'20] 눈길도 손길도 아닌, 그 발길이 진짜였네
[小餘의 '꽃그늘 아래'20] 눈길도 손길도 아닌, 그 발길이 진짜였네 - 더뷰스
[더뷰스 小餘의 \'꽃그늘 아래\'20]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마음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젊은 날엔 마음이 눈을 따라 다녔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마음을 당겨갔다. 먹고 싶고 입고 싶고 갖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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